01
"피디님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나는 시큰둥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돌을 앞에 두고도.
"왜요?"
"피디님이 양심이 있으면 절대 그렇게 편집할 수 없었어요!"
악에 받쳐 소리치는 그녀를 훑어보았다. 긴 연습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들을 모아 하는 경연 프로그램, 순위는 4위,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무엇보다 다 내가 만들어준 성적이었다.
정확히는, 편집을 통해서.
편집의 천재, 악마가 내린 재능, 33살의 젊은 천재 PD. 그게 나 서호윤을 따라다니는 수식언이었다.
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돈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4위 했잖아요."
"그러면 뭐해요? 중요한 건 이미 다 없어졌어요. 대중들은 절 미쳤다고 욕해요. 십 년간 같이 연습하던 친구들하고도 연락이 끊겼어요. 길가에 나가면 계란을 맞는다고요."
"오래 살겠네요."
"네?!"
"욕먹으면 오래 살잖아."
담배를 꺼내 들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탁, 탁 키자 불이 붙었다. 담배 한 모금 깊게 빨아 당긴 뒤 훅하고 연기를 불자 아이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 노래 좀 못하는 거, 알죠?"
"뭐라고요?"
"초반에 뭘 해도 뜨고 싶다고 했잖아요. 열정 넘치는 거 좋아서 편집해서 올려줬습니다. 싸가지 없지만 춤 천재인 컨셉으로, 짜증나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연예인으로. 하도 TV에 비춰줘서 제 조카라는 말도 있잖아요. 닮지도 않았는데."
인터넷에서 보이는 말을 그대로 옮겨주었더니 얼굴에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고, 저는 그걸 도와줬습니다."
당연한 말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얘는 4위 못했다. 지극히 객관적으로 말해줬지만 그녀는 분노에 턱을 떨었다.
"내가 그걸 바랐어요?"
"처음엔, 그거 하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힘들면 통장 잔고 봐요. 그럼 좀 행복해질걸."
나도 가끔 국장이 내 머리에 술 붓고 지랄하면, 세상이 다 의미 없어 보일 때 통장 잔고를 본다. 그리고 가슴을 토닥인다.
그래, 세상 별거 있냐. 돈이면 다 됐지.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궜다. 나는 핸드폰을 힐끔 보았다. 이제 가야 할 때였다.
"할 말 그게 다면 갈게요. 바빠서."
"…피디님."
뒤돌아서 한 발 뗀 순간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귀신처럼 눈을 뒤집고서 내게 저주를 퍼부었다.
"피디님이 폭삭 망하길 빌게요.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올 거예요. 이 입장이 뒤바뀌어서 피디님이 나를 이해하는 날이 올 거라고요. 그때 가서 싹싹 빌고 울어도 소용없어요."
"하이고, 무서워라."
나는 킬킬 웃었다. 오늘 일진이 안 풀리더니 이런 재밌는 일이 생길 줄이야.
저주를 퍼붓는 그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제작국에 돌아가서 다시 편집을 해야 했으니까.
그니까, 재밌는 해프닝으로 치부할 생각이었다.
시스템창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
띠링!
띠링!
띠리링!
[악명 포인트 +100]
[악명 포인트 +350]
[악명 포인트 +500]
[악명 포인트가 쌓였습니다. 게임 시작 조건을 갖추셨습니다.]
[로딩 중….]
"아, 뭐야."
시끄럽게 띠링거리는 소리에 짜증났다. 꿈도 적당히 해야지. 나는 편집 때문에 에너지드링크를 마셔가며 삼 일 동안 겨우 네 시간밖에 못 잤다. 아마도 알람이 울리는 거겠지.
짜증이 나서 눈을 번쩍 뜨려는 순간이었다.
[서호윤 님, 축하드립니다! 듣보 아이돌 타이쿤의 플레이어로 당첨되셨습니다. 10년 회춘 축하드립니다!]
[서호윤: 중소기업 듣보 아이돌.
나이: 23 특징: 군필, 춤에 재능이 1도 없다.
천재 피디였지만,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함.
(※특정 인물 제외)
[게임 공략 실패 시, 영원히 로그아웃이 불가능합니다.]
자다 홍두깨를 맞았다.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시스템창이 떠 있었다. 그를 바라보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자."
핸드폰을 집어치우고 다시 이불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편집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이상한 게 보이는 모양이다.
"별 희한한 꿈을 다…."
내가 어제 너무 무리를 했나보다. 그러나 천장 위에 떠 있는 시스템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두운 방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시스템창에 비현실감이 몰려왔다.
띠링!
"……."
띠링!
"……꿈도 참."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시스템창에 억지로 잠을 이어갈 수조차 없었다. 파들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시스템창이 뚜렷하게 보였다.
[퀘스트 도착: '현실 자각 타임!' 현실을 받아들이자.
당신은 이제 천재 피디가 아니라, 듣보 아이돌 타이쿤의 플레이어다.
듣보 아이돌이 되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0/1 성공 시: '망해가는 아이돌' 칭호 실패 시: 영원히 로그아웃 불가]
영원히 로그아웃 불가? 그 칭호의 불길함에 얼른 일어났다. 지금 나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지?
얼굴을 쓸고 일어섰다. 아무래도 지금 꿈이 오래 가는 모양이다. 일어나서 얼굴이라도 씻으려고 화장실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찬물로 얼굴 좀 축이고 잠도 좀 깨운 뒤에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뭐야?"
지나친 야근으로 생겨 사라지지 않던 다크서클, 슬슬 푸석해지던 얼굴, 그 모든 게 달라졌다.
얼굴이 뽀송하다. 아니, 그것뿐만이 문제가 아니다. 얼굴이….
십 년 전 서호윤이었다.
이건 순전한 공포였다.
얼굴을 턱, 턱 매만지다 기겁하며 물러났다. 내가 아무리 꿈에 있었어도 이렇게 생생할 수는 없었다.
'아싸, 회춘이네.' 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화장실에서 도망쳐 방을 뛰쳐나왔다.
"뭐야, 형."
"서, 서호진."
"놀랐네, 드디어 미쳤어?"
물을 들이켜던 내 동생, 서호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 입에서 물을 뿜어냈다.
"풉! 켁, 컥… 혀, 형 성형했어?"
"뭐?"
"얼굴이 왜 이래? 아니, 성형이 하루 만에 이렇게 돼? 대한민국 의료가 그렇게 발전했어? 무슨 서호윤 10년 전 얼굴처럼…."
서호진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서호진은 그대로였다. 나는 평소 같으면 어디서 하늘 같은 형의 얼굴을 붙잡고 있냐며 지랄을 떨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서호진]
[서호윤의 동생. 대학생.
※해당 인물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서호진 옆에 뜬 시스템창을 보고.
"비켜 봐."
나는 서둘러 지갑을 들었다. 그러다 옆에 둔 주민등록증을 발견한다. 맨 앞자리 수가 바뀌어 있었다.
"이게 뭐야?"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서호윤 씨는 듣보 아이돌 타이쿤의 플레이어가 되셨어요.]
"형?"
서호진도 마찬가지로 꿈이라도 꾸는 듯,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약이라도 한 것처럼 떨리는 손으로 폰을 들고서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한 페이지가 뜬다.
[호우호우 / 본명 서호윤 대파성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20XX년 데뷔]
아무리 봐도 내 얼굴이었다. 원래라면 QBS 방송사 PD라고 떠야했음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치면 나오는 '악마의 편집 서호윤, 이대로 옳은가'
'서호윤에게 가해지는 방송 제재 청원'
'서호윤 PD 프로그램 시청률 최고 경신'
등, 나를 동시에 찬양하고 비판하는 글들이 없었다.
남은 건 망한 아이돌 프로필 관련 글뿐.
[How How! 호우호우, 대파성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아이돌,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미친……."
"형!"
나는 깨질 듯한 두통에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천재 PD, 악마가 내린 재능, 편집의 천재 이 서호윤이? 듣보 아이돌이 되었다고?
***
"내가 사죄할게, 형."
안색이 시퍼레진 서호진을 붙잡고 얘기한 결과는 이랬다.
1. 이건 꿈이 아니다. (꿈에서 깨려고 서호진에게 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냥 아팠다.)
2. 나는 서호진이 요즘 플레이하던 게임에 빙의되었다. ('듣보 아이돌 타이쿤'이라는 모바일 게임. 아이돌을 키우는 게임인 모양이다.)
3. 나는 23살이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다. (서호진은 여전히 스물셋.)
그리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형이 아이돌이라니…. 내가 생각하는 그 아이돌? MR제거당하는 건 기본이고 상식 퀴즈 하나 모른다고 죽도록 까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활짝 웃어야 하는 그런 아이돌?"
"서호진…. 묘하게 디테일해서 사람 열받게 하지 말고 조용히 해라…."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나는 아이돌이 되었다. 그것도 듣보 중의 듣보인. 초록 창에 검색해도 꼴랑 한 페이지밖에 안 나오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머리가 지끈거려서 이마를 짚었다. 아직도 내 옆에는 시스템창이 둥둥, 떠다닌다.
[퀘스트 완료!
'현실 자각 타임!' 현실을 받아들이자.
당신은 이제 천재 피디가 아니다. 아이돌이 되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1/1]
[성공하였습니다.]
['망해가는 아이돌' 칭호를 얻었습니다!]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망해가는 아이돌' 칭호를 보고 나는 토할 것 같았다.
왜? 하필 왜 나야? 아니, 여기는 대체 어디야?
"그럼 내가 어제까지 작업했던 파일은?"
[날아갔습니다!]
Ctrl+S는 눌러놓고 백업까지 했는데, 그게 날아갔다고?
"이런 미친…. 미친… 미친!!"
머리를 붙잡고 미친놈처럼 중얼거리자 서호진이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조용히 해."
가장 처음에 봤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악명 포인트.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면 될수록 나를 저주하던 사람들. 마지막으로 내게 저주를 퍼붓던 아이돌.
-피디님이 폭삭 망하길 빌게요.
야, 나 망했어….
-이 입장이 뒤바뀌어서 피디님이 나를 이해하는 날이 올 거라고요.
나 이해됐어. 다시 한번 빌면 안 될까?
-그때 가서 싹싹 빌고 울어도 소용없어요.
아, 소용없다고….
"형, 정신 차려!"
"내 세이브 파일…."
나는 머리를 박고 중얼거렸다. 결론이 났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돌이 된 모양이다.